글
마음이 아픈 사람들을 위한 넋두리 - 안아프신 분은 그냥 가세요.
* 2005. 5. 31 시작해서 계속 써나갈 듯 합니다. 일상생활에 지장이 있을 정도로 마음이 답답하거나 고통스런 분이
아니라면 가급적 읽지 말아 주시길 권장합니다.
<누군들 원치 않았으리오?>
멋진 몸매와 매끈한 백색피부, 그리고 빛나는 얼굴.
맑고 싱그런 음성으로 세련된 제스쳐를 보이고 언제나 밝고 즐거운 화제거리를 잘 꺼내는 매력.
놀 때는 멋지게 놀고 일할 때는 힘차게 능력을 발산하는 파워풀 액션.
가족과 이웃에게 신망과 능력을 보여 주어 모두가 총애하는 사랑스런 사람.
누군들 원치 않았겠을까?
누군들 풍족한 삶의 여유와 아름다운 사랑은 꿈꾸지 않았으리오?
누군들 단 한번 뿐인 삶을 비참하게 살고 싶었으리오?
그러나 우리 대부분은 바라고자 하는 자신의 모습과 현재의 모습에 심각한 괴리를 느끼며
그저 그렇게 평범하게 살아 가고 있을 뿐이다.
원래의 바라던 바의모습으로서 삶은 이제 더이상 내게 맞지 않기 때문이다.
짧은 키에 튀어나온 배, 거친 피부와 억센 톤의 목소리.
아무리 노력해도 따라 갈 수 없는 잘난 사람과의 메울 수 없는 갭.
이제 모든 수단을 동원해도 내 인생에 획기적인 변화는 없을 것이 틀림이 없어
로또 복권에 모든 희망을 걸고 있는 이 상황에서는, 과거 어린시절에 바라던 바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러나, 체념하므로서 우리의 변명은 수용되는 것이 아니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고 아무도 그냥 놔두는 법이 없이 주위에서 심한 압박을 주고 있다.
변화해야만 한다는 압박!
남들이 다 변하고 있는데 털끝만큼도 변하지 않았다면 그것도 대단한 일이다.
그것이 오히려 더 힘들기에 차라리 쉽게 변화하는 방법을 찾아 고통을 덜어볼까 하는 것이다.
<변화의 고통과 기쁨에 대하여>
변화는 죽음이다.
새로운 것을 택했을 때 버린 것은 아쉬운 죽음이기에 우린 무척 고민한다.
그런데 버리고 싶어도 버릴 수 없어 곱추의혹처럼 된 우리 자아의 일부는 안으로 너무 고착되어서
후련하게 떼어내기도 힘들지만 설령 누가 떼어내 주어도 마음속의 등뼈는펴지지 않고 더욱고통스럽다.
지금 이순간 고통받는 많은 사람들 중의일부는 이 과정의 혼돈 속에서 고통을 받는 것으로 느껴진다.
왜 앓던 이 빼듯이 그토록 시원스레 마음의 고통은 사라지지 않는 것일까?
여기서 고통이라고하는 것은신경성위장병 등을 포함한 육체적 질환까지를 포함하는 포괄적 의미이다.
아마 마음이 편하게 되어 고통이 사라진다면 육체적인 고통도 상당히 없어질 것도 많다고 믿는다.
예를 들어 늘 따라 다니는 두통, 현기증, 소화불량, 잦은 감기, 근육통, 만성피로, 심장질환등의 증세는 적어도
7~80% 이상 좋아질 것이라 아주확신있게 생각된다.
그 누구든 그 어떤 고통이든 분명 안에서 보지말고 밖에서객체로서의 시야로자신을 바라보면 서서히 이러한
고통이 결국자신이 만들어낸 산물임을 느낄 수 있다.
그것을 자꾸 외부로 돌리려고 하는한 우리의 고통은 멈출 수가 없다.
바로 내자신마저도 제대로 보지 못하는 좁은 시야로 어떻게 60억의 세상에 영향을 줄 수 있을까?
자기 자신을 보는 시각을 바꾸는 것이 가장 좋은 변화의 방법이다.
망설이지 말고무심한 남처럼 자신을 바라보면 지금의 고통이 상당히 자아집착임을느낄 수 있다.
집착이 고(苦)라 하는 의미는 집착하는 동안은 절대 알 수 없고 떠나보면 그제서야 알 수 있는 묘한 잠언이기에
설명하기에는 무척 어렵지만 주체를 객관화 하기 위해서는 무슨 의미인지 분명 느껴야만 된다.
내가 무슨 도사나 높은 경지에 올라서 이런 말을 한다면 아무 의미가 없다. 그것은 지금도 우리 주위에
수없이 널려 있는 각종 경전이나 좋은 말 모음에 넘쳐 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내가 이런 글을 쓴다는 것은 우스꽝스럽고 미련스럽기까지도 하지만 단 한 사람이라도 성인(聖人)이
아닌 평범한 사람이 하는 말이기에 더 진솔하게 들어 준다면 난 사회적 책임감을 갖고 계속할 것이다.
특히 방황하는 그리고 반항하는 젊음으로 자아가 피폐해진 인생후배와 긴 이야기를 하고 싶다.
<아픔을 겪는 분께 드리는 혹독한 메세지> 2005. 6. 8. 새벽에
보통 이런 글은 마치 카운셀러 처럼 달콤하고 위로하는 차원의 글이 대부분일 수 있겠으나 나는 분명하게도
한참을 욕을 할 것이 틀림없다. 마음이 괴롭고 세상이 엉망이고 이젠 미쳐버리거나 죽고 싶다는 생각에 더이상
아무런 일이 안될 정도의 고통이 있는 선천적으로 못나고, 가난하고, 은혜를못받았다고 생각되는 분의 아픔의
원인은 100% 자신에게 있기 때문이다.
단 1%라도 내 잘못이 아니고 어쩔 수 없는 환경이나 유전의 탓도 있다고 생각한다면 죽어도고통에서 벗어날
수 없다. 전적으로 나의 고통은 사회적 문제도 정치적 문제도 특히 유전적인 문제도 아니다.
무조건 내가 나를 잘못 만들어 왔기 때문에, 내가 나를 무시하고 마구 대했기 때문에, 내가 나를 너무나 모르고
쓸데 없는 욕심을 부렸기 때문에 아픈 것이지 결코 남의 탓, 환경 탓이 아니다.
아직도 내 자신의 탓만은 아닐 것이라고 1%라도 의심이 든다면 당장 이 글을 더 이상 읽지 말고 지금 그대로
아프거나 미치거나 자살하거나 제멋대로 살기를 권장한다. 뭐든 편하게만 얻으려고 하는 안일한 발상이
바로 내자신의 고통의 원천이기에 결코 공짜로 그 무슨 말도 하지 않을 것이고 그대의 진지한 반성을 촉구한다.
....
"미친 놈. 내가 이 고통때문에 밤새워 고민하고, 마음의 피눈물을 흘리고, 얼마나 이를 악물고 참았으며, 긴긴
외로움의 터널에서절규하며 처절하게 울부짖었는지 상상도 못할 놈이건방지게 내가 편한 것을 추구했다고?"
라는 생각이 또 고개를 치켜 들면 더 이상 이 글을 읽을 필요가 없다. 그러면 계속 그리 살기를바란다.
영원히 구제 받을 수 없는 치졸한 영혼은 그냥 그렇게 내팽개쳐서 죽어도 싸기 때문이다.
일단 겸허한 자기 반성만이 새로운 출발선에 설 수 있는 용기를 주기에 내탓이 아니라는 마음이 있으면
더 이상 그 어떠한 진전도 없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삶은 누구에게나 처절하게도 자신의 약점을 극복하는 과정으로 점철되어 있다.
누구는 선천적으로 잘 났고, 많이 가지고 태어 났으며, 여건이 너무도 잘 풀린다고 비교하려는 마음이
바로 자신의 인생이 비참한 것으로 전락시키는 잣대이다.
누구나 분명코 약점을 극복하는 것이 인생이란 진리를 겸허이 받이 들인다면, 묵묵히 당연히 나의 못남을
남에게 들킬세라남몰래 극복하려 노력할 것인데 다른 사람들의 이러한 노력은 폄하하며 난 엄청난 노력을
하고있다는 생각부터가 글러 먹은 것이다.
오늘 하루도 밝은 미소로 맑은 목소리로 멋지게 단장하고 세련된 태도로 내게 먼저 인사하는 바로 그사람은
나보다 훨씬 먼저 이러한 진리를 느껴서 일찌기 아픔을 치료하고 성장하여온 사람인 것이다.
나의 시니컬한 미소와 마지못해 끌려가는 답례로 아침 이미지를 구기는 짓은 죽어도 안할 사람인 것이다.
내가 비난하거나 헐뜯고 가볍게 평가할 - 다른 못난 점을 찾아서라도 - 가령 대가리가 비어 있는 쓸개빠진 놈
등의 원색적인 폄하를 하려 든다면 다시금 말씀 드리지만 그렇게 뭐 씹은 표정으로 늘 살기 바랄 수 밖에 없다.
이 글의 서두에서 "누군들 원치 않았으리오?"라는 의미를 다시금 되새기면 내자신을 숨기고 어줍잖다는 이유로
나의 본래 바라던 바를 무시하면 안된다는 점이다.
키도 작고, 멋진 말도 못하고, 잘흥분해서 말을 더듬고, 얼굴도 잘 빨개지며, 기타 등등 하더라고
사람은 누구나 그 상황에서라도 조금은 더 잘 할 수 있는 것을 하고 싶어 하기 마련이다.
감추지 말고 자신있게 자신을 드러내면 분명 신선한 충격을 줄 수 있다. 못나기 짝이 없어 보이는 개그맨
안어벙의 엄청난 인기처럼 사람은 누구에게나 뭔가 개발할 것이있고 그것이 잘 드러나는 순간 여지껏의
약점은이젠 실소를 금치 못하는 양념일 뿐이다.
문제는 약점마저도 드러 내놓을 만한 자신감의 개발일 것이다 <계속>
* 글을 쓰고 있는 내 자신이 허전하여 잠시 멈추고 있습니다. 누구라도 멘트 한 번하면 얼마나 좋을까....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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