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여름휴가 다섯째날
남들은 3일도 못 쉬는데 이녀석은 벌써 5일째야? - 라고 할까 걱정이다.
사실 4일 휴가중 3일만 쉬고 토요일과 일요일이 껴있기에 5일째가 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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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휴가중 죽변에서 찾은 드라마 세트 주택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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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산 부모님>
달랑 하나 있는 중3 아들녀석이 방학했는데도 아직 찾아 뵙지 못한 부모님댁을 찾아 갔다.
마침 집사람도 휴가다녀왔으니 인사드리러 가자고도 하기에 게으른 몸을 이끌고
점심식사 사드리러 안산엘 갔다.
메뉴를 정하는데 어머니가 자꾸 우겨서(돈때문이시지만) 동네의 한식부페를 가게 되었다.
왠만하면 날이 너무 더워 시원한 그늘막의 백숙이라도 대접하려 했는데...
특별한 행사손님이 없는데도 노인들이 많이 찾아와 북적거리고 시장판 같이 어수선하였다.
부페라면 적어도 2~3만원은 해야 먹을만 한데 6,500원 짜리이니 오죽할까?
그러나 어머니는 찰밥에 된장찌개하나로도 본전은 건졌다며 좋아 하셨다.
아버진 백숙을 드시지 못해 아쉬워하는 표정이기에 다음 14일 말복날에 백숙을 기약하며
다음메뉴를 정하는 특권을드리는 수 밖에 없었다.
근래 허리를 다치고 몸이 많이 쇠약해 지신 어머니는 다소 기력을 회복하여 즐거운 표정인데
심장이 않좋으신 아버지의 표정이 다소 걱정스럽다. 1Km남짓한 길을 걸어서 다녀 왔는데
자꾸만 뒤로 쳐저 늦게 걷는 모습이 숨이 많이 차시는 모양이다. 지금 일흔 셋이니 향후 적어도
10여 년 이상 건강하게 사시리라 믿지만 부모님 모두 늘 걱정이 되는 것은 사실이다.
있을 때 잘하라는 우리의 평범한 농담이 진담으로 다가올 때가 두렵다.
며칠전 아니 정확히 지난 7월 31일 오후 3시경 전철안에서 일어난 노인사망 건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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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철안에서...>
날씨가 무척 더워서 정신이 없는 날이지만 포토비에서 첫번째 전시회를 한다기에 이수역에가서
관람을 하고 수행의 길(?)을 걷기 위해 뚝섬 서울숲으로 이동하기 위해 전철을 사당에서 갈아 타게 되었다.
막 올라 타려는 순간 번득이는 눈(?)으로 빈자리를 찾기 위해 동물적 본능을 발휘하려 하는데
많은 사람들이 못볼 것을 본 것처럼 자리를 피하며 흘끔흘끔 바라보는 곳에 왠 노인이 온 몸을 고통스레
뒤틀며 숨가뻐 하고 있는 것이었다. 서 있으시다가 쓰러지면서 좌석에 길게 눕게 되었는지 모르지만
거의 쓰러질 듯 모로 뉘어져 숨을 헐떡이는데 이는 단순한 어지럼증이 아니라 아주 위급한 상황이라는
생각이 들어 빨리 연락해야 하지 않느냐고 말해도 사람들이 하나 둘씩 오히려 거리를 두고 멀어졌다.
핸펀MP3로 얄궂은 회화를 반복 청취하다가(이것도 사실 몇달간 쓰지도 않다가 최근 작동법을 배웠다)
급하게 끄고 전화를 건다는 것이 아예 전화기가 꺼져 버렸다. 연락 좀 해달라고 해도 사람들이 멀어지면서
우왕좌왕할뿐 누가 적극적으로 나서는 사람이 없었다. 급하게 핸펀을 바라 보았지만 아주 느긋하게
화면은 여유만만 진행되고 있었다. 30초 내지 1분이었겠지만 핸펀가동 - 특히 전화만 거는 기능은 금방
안될까? 핸펀 회사가 너무도 얄미웠던 순간이었다. (내 폰은 알고보니 불량으로 유명한 V-4400이다)
객실에 붙어 있는 사령실에 전화를 해서 객실번호와 응급조치 준비를 요청하면서 바라보니
외국인 3명이 다가와 부축을 해주고 있었고 내국인 한 두명이 거들어 주고 있었다.
통화가 끝날 무렵 어느 새 방배 역에 도착하였고 우린 노인을 여럿이 들어내어 하차후 의자에 뉘였다.
80여세 쯤 되어 보이는 노인은 이미 숨이 멎은 듯 안색이 아주 검어졌다가 오히려 평온해 진 것 같았다.
외국인은 합심을 하여 인공호흡처치를 하였고 내국인 3명(나 포함)은 다소 뻘줌하게 거들었다.
아무리 사방을 둘러 보아도 누구하나 오지 않고 있다가 헐레 벌떡 뛰어온 녀석은 공익요원 2명.
어떻게 무엇을 해야 할 지 몰라 어수선만 떠는 동안 내국인 한명이 - 다소 술기운이 오른 듯한 분-
경찰에 전화를 했다고하며 곧 경찰이 올 것이라고 하는데 내 생각엔 지금 경찰이 올 시간이 아니라
구급차가 와야하는데 하고 발만 구를 뿐이었다.
흑인 한사람이 가슴압박 거상법을 시행하고 젊은 백인 한 사람이 구강대 구강법으로 최선을 다해
숨을 불어 넣었으나 아무런 반응이 없고 숨을 넣을 때 배가 다소 불러올 뿐이었다.
다소 나이가 든 백인이 목젓에 맥박을 재고 있었으나 전혀 미동하는 기색이 없었다.
잠시뒤 역무원 두명이 달려왔고 그 뒤에 경찰도 왔지만 정작 구급차는 아주 한참 뒤에야 도착했다.
느낌에는 20분정도 걸린 것 같다.
그사이 난 내 자신이 부끄럽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서른도 안되 보이는 젊은 친구가 그토록 열심히 인공호흡을 하건만 난 고교 교련시간에, 그리고 군대 3년에,
그것도 모자라 예비군, 민방위 제대할 때까지 엄청난 교육을 받았는데 왜 시도조차 못하고 그럴 자신감도
전혀 없을까? 왜 외국인 3명은 저토록 열심히행색이나 입성이그리 좋아뵈지도 않는 노인에게 마치
육친처럼 모든 정성을 쏟는 것일까? -------
인공호흡을 하는 동안 갑자기 코에서 뭔가가 터져 나와 젊은 친구의 입과 손에 이물질이 묻게 되었다.
나중에 느낀 것이지만 사망하면 뭔가 터져 나온다는 생각은 미처 못했다. 휴지가 없어 내가 소지하던
수건을 얼른 주었지만 난 이 자리를 피하고 싶은 생각이 꼬리를 물고 늘어 지는 것을 느꼈다.
대학생인 듯, 통역이 필요할까봐 같이 내렸는지, 옆에 있던 젊은 사람은 연신 "Shit,Shit"하면서
터져 나온 이물질에 구역을 느끼는 것처럼 연상 떠드는데 더욱 역겨웠고 다른 내국인 한명은 술에 취한듯
연신 고함을 치고 떠들어서 흉부압박을 하던 흑인이 화를 낼 정도였다. 그사람도 경찰이 올 때 쯤 갔다.
그리고 통역만을 위해 존재코자한 듯한 학생도 경찰에 주소를 알려준뒤 사라졌다.
경찰이내 주소, 흑인의 주소를 적고 구급차가 와서 노인을 그 어떤 처치도 없이 들쳐 들고 나갈때 까지
(아래 글이 날라가 버렸던 모양이다. 다시 기억을 더듬어 마무리 해야겠다)
난 심한 자괴심과 혼돈으로 정신이 멍해 서있었을 뿐이었다.
멍하게 있는 동안에 백인 두명이 화장실에 다녀 왔는지 다시 전철에 탑승하러 다가 왔다.
알고보니 나이 든 분은 존 맥네일이라는 캐나다 분으로 안산영어마을에서 선생님으로 계신 분이었고
젊은 사람은 휴가차 어제 한국에 첫발을 디뎠고 오늘 아버지를 따라 코엑스에 관광을 가는 중이었다고 했다.
마침 안산은 내가 근무했던 지역이고 부모님이 계셔서 편하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고 여러번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나중에 꼭 연락을 하겠노라고 해놓고는 아직도 다시 감사 전화를 드리지 못함은 아직 나의 마음
한구석에 남아 있는 자괴심 때문인 듯하다. (혹시 아시는 분은 한국을 대표해서 감사 전화 주심 좋겠네요)
그 분들과 헤어지고 미심쩍어 중앙일보 사회부 기자에게 전화를 해서 지하철 비상대책 체제나 응급출동에
문제가 없었는가 취재를 부탁했는데 추가적인 연락이 없는 것으로 보아 아마 행정적으로 큰 문제는 없었나보다.
두어번 경찰이 확인차 전화한 것 외에는 유족의 연락도 없이 그저 그렇게 그날의 일은 소리없이 묻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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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임종을 지켜본다는 것과 헌신적으로 봉사하는 외국인의 경이적인 마인드에 난 아직도 혼미스럽다.
일전에 미국에 잠시 있을 때 그들의 생활태도와 봉사정신에 감동을 넘어선 문화충격까지 느꼈기에 오늘의
일들이 더욱 확실히 나를 엄습해 오는 것이었다.
아직도 난 시간이 필요하다. 그날 뚝섬 서울 숲을 헤매며 찍은 사진은 아마도 한동안 포스팅할 엄두도
안 날 것 같고 멍하게 찍는 바람에 사진도 제대로 된 것도 없는 듯하다.
지하철에서 20분이상 사투하는 방법과 위선이 없이 진심으로 봉사할 수 있는 마음을 함양하기에는
내겐 너무나 슬픈까마득하게 먼 길 같다. ㅜ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