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휴가 다섯째날

Writings 2005. 8. 9. 11:43

남들은 3일도 못 쉬는데 이녀석은 벌써 5일째야? - 라고 할까 걱정이다.

사실 4일 휴가중 3일만 쉬고 토요일과 일요일이 껴있기에 5일째가 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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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휴가중 죽변에서 찾은 드라마 세트 주택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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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산 부모님>

달랑 하나 있는 중3 아들녀석이 방학했는데도 아직 찾아 뵙지 못한 부모님댁을 찾아 갔다.

마침 집사람도 휴가다녀왔으니 인사드리러 가자고도 하기에 게으른 몸을 이끌고

점심식사 사드리러 안산엘 갔다.

메뉴를 정하는데 어머니가 자꾸 우겨서(돈때문이시지만) 동네의 한식부페를 가게 되었다.

왠만하면 날이 너무 더워 시원한 그늘막의 백숙이라도 대접하려 했는데...

특별한 행사손님이 없는데도 노인들이 많이 찾아와 북적거리고 시장판 같이 어수선하였다.

부페라면 적어도 2~3만원은 해야 먹을만 한데 6,500원 짜리이니 오죽할까?

그러나 어머니는 찰밥에 된장찌개하나로도 본전은 건졌다며 좋아 하셨다.

아버진 백숙을 드시지 못해 아쉬워하는 표정이기에 다음 14일 말복날에 백숙을 기약하며

다음메뉴를 정하는 특권을드리는 수 밖에 없었다.

근래 허리를 다치고 몸이 많이 쇠약해 지신 어머니는 다소 기력을 회복하여 즐거운 표정인데

심장이 않좋으신 아버지의 표정이 다소 걱정스럽다. 1Km남짓한 길을 걸어서 다녀 왔는데

자꾸만 뒤로 쳐저 늦게 걷는 모습이 숨이 많이 차시는 모양이다. 지금 일흔 셋이니 향후 적어도

10여 년 이상 건강하게 사시리라 믿지만 부모님 모두 늘 걱정이 되는 것은 사실이다.

있을 때 잘하라는 우리의 평범한 농담이 진담으로 다가올 때가 두렵다.

며칠전 아니 정확히 지난 7월 31일 오후 3시경 전철안에서 일어난 노인사망 건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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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철안에서...>

날씨가 무척 더워서 정신이 없는 날이지만 포토비에서 첫번째 전시회를 한다기에 이수역에가서

관람을 하고 수행의 길(?)을 걷기 위해 뚝섬 서울숲으로 이동하기 위해 전철을 사당에서 갈아 타게 되었다.

막 올라 타려는 순간 번득이는 눈(?)으로 빈자리를 찾기 위해 동물적 본능을 발휘하려 하는데

많은 사람들이 못볼 것을 본 것처럼 자리를 피하며 흘끔흘끔 바라보는 곳에 왠 노인이 온 몸을 고통스레

뒤틀며 숨가뻐 하고 있는 것이었다. 서 있으시다가 쓰러지면서 좌석에 길게 눕게 되었는지 모르지만

거의 쓰러질 듯 모로 뉘어져 숨을 헐떡이는데 이는 단순한 어지럼증이 아니라 아주 위급한 상황이라는

생각이 들어 빨리 연락해야 하지 않느냐고 말해도 사람들이 하나 둘씩 오히려 거리를 두고 멀어졌다.

핸펀MP3로 얄궂은 회화를 반복 청취하다가(이것도 사실 몇달간 쓰지도 않다가 최근 작동법을 배웠다)

급하게 끄고 전화를 건다는 것이 아예 전화기가 꺼져 버렸다. 연락 좀 해달라고 해도 사람들이 멀어지면서

우왕좌왕할뿐 누가 적극적으로 나서는 사람이 없었다. 급하게 핸펀을 바라 보았지만 아주 느긋하게

화면은 여유만만 진행되고 있었다. 30초 내지 1분이었겠지만 핸펀가동 - 특히 전화만 거는 기능은 금방

안될까? 핸펀 회사가 너무도 얄미웠던 순간이었다. (내 폰은 알고보니 불량으로 유명한 V-4400이다)

객실에 붙어 있는 사령실에 전화를 해서 객실번호와 응급조치 준비를 요청하면서 바라보니

외국인 3명이 다가와 부축을 해주고 있었고 내국인 한 두명이 거들어 주고 있었다.

통화가 끝날 무렵 어느 새 방배 역에 도착하였고 우린 노인을 여럿이 들어내어 하차후 의자에 뉘였다.

80여세 쯤 되어 보이는 노인은 이미 숨이 멎은 듯 안색이 아주 검어졌다가 오히려 평온해 진 것 같았다.

외국인은 합심을 하여 인공호흡처치를 하였고 내국인 3명(나 포함)은 다소 뻘줌하게 거들었다.

아무리 사방을 둘러 보아도 누구하나 오지 않고 있다가 헐레 벌떡 뛰어온 녀석은 공익요원 2명.

어떻게 무엇을 해야 할 지 몰라 어수선만 떠는 동안 내국인 한명이 - 다소 술기운이 오른 듯한 분-

경찰에 전화를 했다고하며 곧 경찰이 올 것이라고 하는데 내 생각엔 지금 경찰이 올 시간이 아니라

구급차가 와야하는데 하고 발만 구를 뿐이었다.

흑인 한사람이 가슴압박 거상법을 시행하고 젊은 백인 한 사람이 구강대 구강법으로 최선을 다해

숨을 불어 넣었으나 아무런 반응이 없고 숨을 넣을 때 배가 다소 불러올 뿐이었다.

다소 나이가 든 백인이 목젓에 맥박을 재고 있었으나 전혀 미동하는 기색이 없었다.

잠시뒤 역무원 두명이 달려왔고 그 뒤에 경찰도 왔지만 정작 구급차는 아주 한참 뒤에야 도착했다.

느낌에는 20분정도 걸린 것 같다.

그사이 난 내 자신이 부끄럽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서른도 안되 보이는 젊은 친구가 그토록 열심히 인공호흡을 하건만 난 고교 교련시간에, 그리고 군대 3년에,

그것도 모자라 예비군, 민방위 제대할 때까지 엄청난 교육을 받았는데 왜 시도조차 못하고 그럴 자신감도

전혀 없을까? 왜 외국인 3명은 저토록 열심히행색이나 입성이그리 좋아뵈지도 않는 노인에게 마치

육친처럼 모든 정성을 쏟는 것일까? -------

인공호흡을 하는 동안 갑자기 코에서 뭔가가 터져 나와 젊은 친구의 입과 손에 이물질이 묻게 되었다.

나중에 느낀 것이지만 사망하면 뭔가 터져 나온다는 생각은 미처 못했다. 휴지가 없어 내가 소지하던

수건을 얼른 주었지만 난 이 자리를 피하고 싶은 생각이 꼬리를 물고 늘어 지는 것을 느꼈다.

대학생인 듯, 통역이 필요할까봐 같이 내렸는지, 옆에 있던 젊은 사람은 연신 "Shit,Shit"하면서

터져 나온 이물질에 구역을 느끼는 것처럼 연상 떠드는데 더욱 역겨웠고 다른 내국인 한명은 술에 취한듯

연신 고함을 치고 떠들어서 흉부압박을 하던 흑인이 화를 낼 정도였다. 그사람도 경찰이 올 때 쯤 갔다.

그리고 통역만을 위해 존재코자한 듯한 학생도 경찰에 주소를 알려준뒤 사라졌다.

경찰이내 주소, 흑인의 주소를 적고 구급차가 와서 노인을 그 어떤 처치도 없이 들쳐 들고 나갈때 까지

(아래 글이 날라가 버렸던 모양이다. 다시 기억을 더듬어 마무리 해야겠다)

난 심한 자괴심과 혼돈으로 정신이 멍해 서있었을 뿐이었다.

멍하게 있는 동안에 백인 두명이 화장실에 다녀 왔는지 다시 전철에 탑승하러 다가 왔다.

알고보니 나이 든 분은 존 맥네일이라는 캐나다 분으로 안산영어마을에서 선생님으로 계신 분이었고

젊은 사람은 휴가차 어제 한국에 첫발을 디뎠고 오늘 아버지를 따라 코엑스에 관광을 가는 중이었다고 했다.

마침 안산은 내가 근무했던 지역이고 부모님이 계셔서 편하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고 여러번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나중에 꼭 연락을 하겠노라고 해놓고는 아직도 다시 감사 전화를 드리지 못함은 아직 나의 마음

한구석에 남아 있는 자괴심 때문인 듯하다. (혹시 아시는 분은 한국을 대표해서 감사 전화 주심 좋겠네요)

그 분들과 헤어지고 미심쩍어 중앙일보 사회부 기자에게 전화를 해서 지하철 비상대책 체제나 응급출동에

문제가 없었는가 취재를 부탁했는데 추가적인 연락이 없는 것으로 보아 아마 행정적으로 큰 문제는 없었나보다.

두어번 경찰이 확인차 전화한 것 외에는 유족의 연락도 없이 그저 그렇게 그날의 일은 소리없이 묻히고 있다.

.................

사람의 임종을 지켜본다는 것과 헌신적으로 봉사하는 외국인의 경이적인 마인드에 난 아직도 혼미스럽다.

일전에 미국에 잠시 있을 때 그들의 생활태도와 봉사정신에 감동을 넘어선 문화충격까지 느꼈기에 오늘의

일들이 더욱 확실히 나를 엄습해 오는 것이었다.

아직도 난 시간이 필요하다. 그날 뚝섬 서울 숲을 헤매며 찍은 사진은 아마도 한동안 포스팅할 엄두도

안 날 것 같고 멍하게 찍는 바람에 사진도 제대로 된 것도 없는 듯하다.

지하철에서 20분이상 사투하는 방법과 위선이 없이 진심으로 봉사할 수 있는 마음을 함양하기에는

내겐 너무나 슬픈까마득하게 먼 길 같다.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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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종사 파업

Writings 2005. 7. 29. 09:36





지난 6월 부산 을숙도에서 그 흔한 철새하나 찍어보려다 허탕치고 큰 새(?)한마리 낚던 날 사진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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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종사 파업을 보면서>

비행기 운전! 그까이꺼 대충 술한잔 마신뒤 자동으로 세팅하면 되는거여~ 그까이꺼.

영어! 그까이꺼 스크립트 만들어 놓고 지역명과 시간만 그때그때 바꿔서 읽으면 되는거여. 그까이꺼.

....

아까 어떤 기사를 보니 며느리가 시어머니 뺨을 때리는 장면이 방영되었는데 담당PD말이 현실에서

일어나는 일을 리얼하게 표현했다고 한다. 현실에서 일어난다고? 그러면 더욱 엽기적인 살해 장면을

방영하는 것은 어떨까?

....

사실 며칠전부터 틱낫한 스님의 화두인 "화"에 대하여 공감하였던 지라 "작은 화"라는 글을 쓰려고 했다.

예를 들면

앞차에서 던진 담배 꽁초가 내 앞유리창으로 날아 올때

누런 가래침을 뱉어서 내 타이어에 분명히 쫙깔릴때

안전운전한다고 밀리는 러쉬아워에 차간거리 100M 지키는 편안한 아저씨, 아줌마 등등

운전관련이거나 일상생활 관련이거나 우리에게 일어나는 작은 치밀어 오르는 화를 재미로 받아 들이고

잘 소화하자는 글을 쓰고 싶었다.

그런데

오늘은 진짜로 화가나서 견딜수가 없다.

내용은 보지 않았으나 시어머니의 뺨을 때리는 장면을 태연스레 내보내도 되는 방송이나 사회에 대하여,

조금 내가 가진 특권이 있다하여 그것을 볼모로 더 많은 이익을 요구하는 못된 집단을 보면서

이는 군대가 힘을 가졌기 때문에 언제나 쿠데타를 일으켜도 된다는 논리 같아서 너무나 화가 난다.

아! 화난다.

그냥 선량한 의식을 가진 대다수의 민중의 힘으로 못된 인간들을 싹 쓸어 버리는 쿠데타는 없는가?

화가 나서 견딜 수가 없다. 정말로.

어디가서 공중전화 박스의 유리라도 깨버려야 화가 풀릴 것 같다.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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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 8. 9 추가 : 상기 패륜방송은 하반신 노출사고방송과 함께 최고의 중징계를 받는답니다.

간접적으로라도 마음이 풀리는 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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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론

Writings 2005. 7. 26. 10:13


<사진: 한여름 조금이라도 시원하시라고...>

나는 이제 감히 행복을 논하려 한다.

무엇이 행복인지자신있게 이야기 할 수도 있고 그 정도의 충분한 경험도 했다고 확신한다.

나의 이야기라면 의미가퇴색될 수 있기에주위에 행복을 구가하는 분들을 빌어 "행복"에 도전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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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행복합니다.

나는 행복합니다.

여자를 사랑하는 나는 행복합니다.

멀리서 실바람타고 날아오는 밝은 그녀의 웃음소리에 내 마음은 파동을 칩니다.

원색의 일렁이는 풍성한 3단 레이스 스커트도 예쁘고

단을 일부러 풀어헤친 짧은 청치마에 긴 싹스도 도발적입니다.

그녀의 깊은 눈망울과 키스를 부르는 촉촉한 입술에 가슴은 뛰고

가지런한 하얀 치아에 향기를 느낍니다.

나는 더이상 생각지 않습니다.

그녀가 괴테를 논하고 페미니즘에 열변을 토로하지 않는다고 난 비난하지 않습니다.

나의 가슴에 그대로 청포도처럼 맺혀 준 것만으로 난 행복합니다.

나는 행복합니다.

술을 즐겁게 마실 수 있어서 행복합니다.

일상에 찌들어 도저히 탈출할 수 없을 때 잠깐 사이에도 우린 남태평양에 갈 수도 있지요.

정구지 절인 새콤한 서비스 안주 하나로도 시원스레 생맥주 5잔은 마시지요.

풍성한 과일모듬, 북어포가 잘 버물여진 쫄깃한 골뱅이, 훈제의 독특한 향이 느껴지는 바비큐.

친구와 어깨동무하며 옛날로 돌아가면 모든 맺힌 것이 술술 풀리는 술이 있어 행복합니다.

나는 더이상 마시지 않으려 애씁니다.

너무 잘난 내 자신을강화하고 싶을 때는, 내 자신이 비참하고 열등해서 술로라도 만회하고 싶을 때는,

술을 빌어 사랑을 갈구하고, 술을 빌어 용기와 비젼을 갖을 때는 많이마시지 않으려 애써 봅니다.

그러나 만취해서 들어가는 휘청거리는 새벽에

왜 그리도 희미한 불빛을 달고 있는 전봇대는 쓸쓸한지 마음에 눈물을 흘릴 때

갑자기 스쳐지나가는 밤까마귀를 보며 온 몸에 전율을 느낍니다.

힘든 일입니다. 전봇대에 매달려 내 자신을 억지로 잊으려 하는 일은...

다음에 술마실때는 친구와 소달구지 타고 마시는 것으로바꾸렵니다.

나는 행복합니다.

공초 오상순은 아닐지라도 나 또한 낭만담배를 피우기 때문에 행복합니다.

광활한 대지에서, 녹음 우거진 계곡에서, 이태리풍으로 꾸며진 커피숍에서...

그녀와 헤어졌을 때, 다니던 직장을 그만 두게 되었을 때, 아픔을 가슴에 묻으려 할 때...

그는 늘 내곁에서 나를 조용히 위로해 주었기에 아직도 그와 이별을 못하고 있습니다.

다행히 그와 함께 있어도 여전히 튼튼한 심폐기능에 난 행복합니다.

아이들의 등살에 마눌님의 성화에

언젠가 그와 이별할 지 몰라도 추억으로도 행복할 것입니다.

난 행복합니다.

못가진 아홉 가지에 분노하고 배분의 정의를 실현코자 애쓰지 않아도

가지고 있는 한 가지가 내겐 너무 풍족하여 난 행복합니다.

사랑!

이 세상에 단 한 번 뿐인 삶에 의미있는 생명을 불어 넣어 준

그 사랑을 느끼며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계산도 없고, 논리도 없으며, 시작과 끝도 없을 사랑이 온 몸에 퍼져올 때

아! 난 사랑의 대상조차 없음에도 넘치는 사랑을 느끼며

행복할 수 없는 육신과 물질을 가지고 있슴에도 난 진정으로 행복합니다.

이제는

아무런 불평없이, 아무런 두려움 없이

절대 지적존재의 부름에라도 기쁘게 달려 갈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사랑합니다.

아름다운 지구의그 모든 것들을...

그리하여

늘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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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영철 사형확정을 보고

Writings 2005. 6. 12. 09:18

희대의 살인마 유영철의 사형이 확정된 것을 보다가 갑자기 예전에 써 놓았던 글이 생각나

옮겨 보려 한다. 살인마를 두둔하거나 이해하려 애쓰는 것은 아니고 누구나 사회적 환경에 따라

잘못된 판단이 굳어 지는 것을 경계함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유사한 저작권 침해를 하지 않도록

부탁드리며 재미없는 글을 올린다.

 

<글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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